af 달팽이 일상


아침

창 너머로 분주하게 오가는 아침 사람들이 보인다.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조금은 신경쓴 옷차림으로

각자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이

찬 기운에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


사람들 사이에 나도

존재한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가지고...

연인5 글쓰는 달팽이

너도 네 또래 여자아이 만나. 영은이 민재를 똑바로 보며 말한다. 민재의 눈빛이 가슴이 잠깐 흔들린다. 그녀가 성훈 선배를 만났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그와 잤다. 그리고 민재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여자가 두렵다. 왜 다른 여자를 만나요..누나를 이해 할 수 없어요. 왜 그래요. 민재는 영은의 표정을 행동을 쫓는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민재가 관통할 수 없는 언어의 세계 속에 영은의 말들이 민재의 가슴속을 헤집고 머릿속을 툭 툭 건드리며 그를 위태롭고 두려운 곳으로 앞세우려 한다. 민재는 두려움에 뒷걸음 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영은의 언어다. 민재가 소화할 수 없는 언어를 영은이 천천히 또박또박 아무런 표정을 하지 않은 채 내뱉고 있다. 허공에 툭 떨어진 듯 가만히 있는 영은의 손을 민재는 본다. 영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그녀의 어깨를 민재의 품에 안아 갖고 싶다. 민재는 손 끝 하나 들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영은의 표정 없는 얼굴을 허공에 잠깐 놓은 듯한 눈동자를 본다. 그녀에게 손댈 수 없다. 손을 대면 으스러져 깨지고 사라져 없어질 것 같다. 민재가 가만히 영은 앞에 앉아 기다린다. 그녀가 다시 민재의 얼굴을 손에 감싸 안은 채 배 안고파 물을 때 까지.

 

성훈을 만났다. 성훈이 오랜만에 술을 한 잔 마시자 했고 술을 마시며 줄곧 영은을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성훈을 욕망을 읽은 영은은 그를 그냥 그렇게 외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은은 성훈과 잤다. 성훈에게 손과 입술 가슴을 내어 주었고 그의 욕망을 채워 주고 그리고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확인했다.

 

영은은 언젠가 민재가 짐을 싸고 집을 나가는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곱씹는다. 그리고 운다. 그 애가 영은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없다고 그렇게 그 아이를 그녀 곁에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봄이다.

모두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분주해 지는 봄이다.

아침 햇볕이 너무나 밝아 지독히 쓸쓸하고 불안하고 외로운 봄.

봄이 왔는데 나는 그대로다.

사람들은 분주한데 나는 그곳에 서 있다.



스산한 공허함이 아침 공기로  온 몸을 휘감아 누른다.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묵묵함에 눌려 견디기 힘든 적막에 으스러질 듯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집안의 아침 공기가 한기를 느끼게 해 보일러 온도를 올려 놓는다.

서걱한  봄 기운이 무겁다.

연인4 글쓰는 달팽이

응급 구조 센터 승합차 안에 앉아 그가 떨고 있다. 막 스키장으로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외삼촌의 전화가 그녀를 막았다. 지금 니가 와서 결정해야 하는 거라고. 삼촌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니 아버지 살려야 할 것 아니냐고. 삼촌이 알콜 중독 병원 승합차에 아빠를 넣어 놓은 채 영은에게 전화를 했다. 너 있는 곳 근처다. 일부러 이쪽로 병원을 정했다. 얼른 와서 아버지를 봐라. 아버지는 언제나 영은의 평화를 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마음의 쉼이 없는 공간.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함과 분노에 떨어야 했던 그 공간.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영어단어를 외우며 수학 문제를 풀며 생각한 것은 오직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은은 다시 두려웠다. 아버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움츠리고 있었다. 아이처럼 다리를 모으고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을 잊은 듯 허공 어딘가에 눈을 붙이고 떨고 있었다. 영은은 승합차에 올라 그 앞에 앉는다. 그가 영은을 어느새 보았다. 영은아 아빠가 죽을 것 같다. 아빠 좀 살려줘. 아빠 좀 살려줘라.. 몸을 움츠린 채 그가 영은에게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다. 늘 술에 취해 영은의 분노를 샀던 아버지. 차라리 없었으면 죽어버렸으면 우리가 내가 더 행복할 텐데 라고 생각하게 했던 아버지. 집 앞에 들어서기 전 그가 집에 없기를 바라고 집에 있을 땐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땐 어딘가에서 술에 취해 있을까 불안했던 그가 언제나 영은에게 불안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그가 마치 당장 관에 들어가 누울 것 같은 얼굴과 악취를 풍기며 아이처럼 떨며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다. 영은은 정말로 그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은은 아버지를 안았다. 악취가 코를 찔러 폐부까지 들어온다. 아빠가... 아빠가 사랑하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신으로 영은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영은은 그날 또다시 아무 결정을 못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아버지의 강제 입원 절차를 밟았다. 몸부림 치고 울부짓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그녀는 삼촌의 차에 말없이 올랐다. 그리고 울었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 때문에가 아닌 분노와 두려움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끊어지지 않는 지리한 관계의 아픔속에 서럽게 울었다. 그날 아버지는 영은 마음속에 한 번 죽었다

 

 

텅 빈 거실 가운데 영은이 서서 베란다 아래 풍경을 내려다 본다. 새벽 잠을 뒤척인 그녀가 두통과 현기증으로 허공에 잠깐 휘둘린다. 부엌 식탁위에 민재가 올려놓은 토스트 조각이 영은의 헛헛함을 채워 달랜다. 토스트를 바라보던 영은이 다시 거실 소파로 돌아와 앉는다. 전화 메시지에 민재의 당부가 들어있다. 토스트 먹고 일해요. 새벽에 자면서 왜 그렇게 울어요. 꿈꿨어요? 마음 아프게 울지 말아요. 사랑해요. 먹먹한 행복과 두려움이 영은을 흔들어 붙든다. 빛처럼 아름다운 민재가 그립다.


1 2 3 4 5 6 7 8 9